오륜교회 김은호 설립목사 주일설교/2023년 주일 설교

이제, 삶으로 예배하라 (로마서 12:1) 2023.02.12

smile 주 2023. 4. 3. 15:09

2023.02.12  한주간의 말씀 요약 - 씀리뷰 49   https://youtu.be/5MdLI9t3PFw

   

이제, 삶으로 예배하라 (로마서 12:1)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보통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원인에 대한 결과를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 1-11장까지는 '이신칭의'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교리에 대하여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12장부터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으면 이제부터는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믿음과 행함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삶은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ㅇ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도 바울은 이제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은 형제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권면을 합니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권면을 합니다(1). 바울은 지금까지 이신칭의 교리를 강론할 때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생활을 말할 때는 명령과 선포가 아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는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종의 삶이 아니라 은혜로 인하여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순종의 삶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하노니"가 아니라 권하노니" 권면으로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ㅇ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오직 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릴 때 반복하여 흠이 없고 점도 없는 깨끗한 제물을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소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로 드려 그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9:12).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처럼 짐승을 잡아 죽임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죽은 제물을 드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은 제물이 아니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몸은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 혹은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ㅇ 이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이 말은 "너희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 구원을 받았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너의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러지는 예배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삶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예배라는 말은 "합당한'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합당한 예배, 영적 예배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예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예배의 장소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우리의 몸이 바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고후6:16). 그러면 성전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전6:19-20). 그러므로 나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는 나의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ㅇ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첫째,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짜증이 나는 일도 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일은 거룩하고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시간은 거룩하고 공부하는 시간 일하는 시간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안에서의 봉사나 세상에서의 일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3:23). 그러면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삶은 뭘까요? 그것은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주를 의식하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공부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때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운동을 할 때에도, 의사와 간호사로서 환자를 섬기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흑인민가 출신으로 세계 최고 의사가 된 Dr. 벤 카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크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라 우리 예수님도 최선의 삶을 사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30년을 목수로 사셨는데 예수님은 목수로서도 최선의 삶을 사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도 식사하실 거도 없을 만큼 최선의 삶을 사셨습니다.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예배인 것입니다.

 

둘째,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려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렇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세상에서입니다. 교회 안에서가 아닙니다.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도 어렵게 살지만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의 관심을 가져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구별된 삶입니다. 왜 우리가 시험을 볼 때에 컨닝을 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까? 왜 술과 담배를 하지말아야 합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내 삶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도 예배입니다. 집안일을 하고, 자녀를 키우는 것도 예배입니다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좋은 아빠가 되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삶의 현장에서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