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11. 열왕기상 묵상노트(완료)

열왕기상 18장 16 – 29 우상숭배의 허망함

smile 주 2023. 10. 3. 06:37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

16 오바댜가 아합에게 가서 엘리야가 있는 곳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갔습니다.

17 아합이 엘리야를 보고 말했습니다. “바로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냐?”

18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왕과 왕의 집안이오. 왕은 여호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바알 신을 따랐소.

19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를 만나러 갈멜 산으로 오라고 이르시오. 이세벨에게서 얻어먹고사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도 데려오시오.”

20 아합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그 예언자들을 갈멜 산으로 불러모았습니다.

21 엘리야가 백성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바알과 여호와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렵니까? 여호와와 바알을 함께 섬길 것이오? 여호와가 참하나님이시면 여호와를 따르고 바알이 참하나님이면 바알을 따르시오.” 그러나 백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22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예언자라고는 나밖에 남은 사람이 없소.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들은 사백오십 명이나 있소.

23 소 두 마리를 가져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한 마리를 고르게 하고 그 소를 잡아서 여러 조각으로 나눈 다음에 장작 위에 올려놓게 하시오. 그러나 거기에 불을 지피지는 마오. 나도 나머지 소 한 마리를 잡아서 장작 위에 올려놓겠소. 나도 거기에 불을 지피지 않겠소.

24 당신들 바알의 예언자들이여, 당신들의 신에게 기도하시오. 나도 여호와께 기도하겠소. 기도를 들어주셔서 불을 내리시는 신이 참하나님이시오.” 그러자 모든 백성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수가 많으니 먼저 하시오. 소 한 마리를 잡아서 준비하고 당신들의 신에게 기도하시오. 그러나 불을 지피지는 마시오.”

26 그리하여 그들은 소 한 마리를 잡아다가 준비해 놓고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들은바알이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제단 둘레를 돌며 춤을 추었습니다.

27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부추겼습니다. “더 크게 기도해 보시오. 바알이 정말로 신이라면 지금 생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일로 바쁘거나 어디 먼 길을 떠났는지도 모르지 않소? 어쩌면 자고 있는지도 모르겠소. 그렇다면 깨워야 하지 않겠소?”

28 그들은 더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찔러서 피가 나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자기들의 신을 예배하기도 했습니다.

29 낮이 지나서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 다 되도록 바알의 예언자들은 계속해서 미친 듯이 날뛰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아합

아합은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비난합니다. 이를 통해 아합이 이스라엘을 고통받게 만든 문제의 근원이 자신임을 모르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엘리야는 아합의 우상 숭배가 기근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해 줍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불평하며 잘못을 전가합니다. 그러나 자기 행실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과 주변 사람과의 화목한 관계를 통하여 복을 받습니다(눅

 

우상 숭배의 허망함이 드러남

하나님을 믿는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의 대결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숭배하던 우상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 삶이 풍요로워질 거라고 기대했으나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선지자들은 이미 헛된 우상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수없이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우상 숭배의 범죄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의 허망함을 직시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생각과 욕심을 따르지 않고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승리로 손꼽히는 갈멜산 대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워 승리했어요. 이 사건은 긴장감을 넘어서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만들죠.

오늘 말씀을 통해 머뭇머뭇하는 신앙이 아닌 선명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당시 아합과 이세벨의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들은 바알이 비를 내리고 아세라가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수년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바알을 섬겼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어요. 바알과 아세라의 무능함이 증명된 것입니다. 하지만 무지하고 무능했던 아합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17절 말씀이에요.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17). 아합은 이스라엘이 괴로움을 당하는 이유가 바로 엘리야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근에 대한 책임이 엘리야에게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합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엘리야가 아닌 아합 자신이었어요. 엘리야는 18절에서 이렇게 말하죠.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8).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의 정체는 엘리야가 아닌 아합이었습니다. 엘리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바알 숭배를 없애는 것이 해결책이었어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엘리야는 누가 참 하나님인지 증명하기 위해 영적 결투를 벌이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외쳤어요. 21절 말씀입니다. “... 너희가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21a). “머뭇머뭇 하려느냐”는 말은 원어적으로 절뚝거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마치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는 모습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나중에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 몸을 자해하며 절뚝거리게 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절뚝거리는 삶을 살았어요. 엘리야는 여호수아처럼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외쳤지만, 백성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선택하지 않았어요. 결국 머뭇거리며 절뚝거리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위험천만한 대결방법을 제안하죠. 송아지의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을 내리는 신이 참 신이라는 것이었어요.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제단 주위에서 춤을 추고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바알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을 조롱했어요. “더 크게 불러라. 묵상하는지 잠깐 나갔는지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바알의 헛됨과 무능력을 조롱했습니다. 바알은 신이 아니라 한낱 조롱거리일 뿐이었어요. 바알 선지자들은 더욱 큰소리로 기도했고, 급기야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자해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더욱 크게 부르짖을수록 그들의 신은 더욱 크게 조롱당할 뿐이었어요. 결국 그들은 절뚝거리며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절뚝거리게 됩니다. 아합은 괴로움의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괴로움의 원인은 엘리야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여호와가 아닌 바알을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이 땅에서 절뚝거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린다면, 우리는 절뚝거리는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어요. 제대로 분별하여 진리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절뚝거리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혹시 우리가 머뭇머뭇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의 가치 앞에서 머뭇거리며 절뚝거리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 진리 되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진리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진리에 대한 확신 가운데 믿음으로 내딛는 분명한 한 걸음 한 걸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XUe8Sr5MSVk?si=CiG39JpIjy4u4b_3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아합은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비난합니다. 엘리야는 아합의 우상 숭배가 기근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산으로 불러,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 되게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아합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이 벌어집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자기 몸까지 상하게 하면서 종일 뛰놀며 바알을 부르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어떤 복이 있습니까?

-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이웃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적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 우상을 버리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우상의 헛됨을 깨닫게 하신다는 사실은 어떤 위로를 줍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결전을 벌이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고 외칩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지금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섬기며 살아가고 있음을 엘리야는 지적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면서도 진정으로 쫓고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의 이득을 쫓고 있다면 이 역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신임을 확신하고 그분만을 온전히 쫓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기 위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세상과 짝하는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하겠느냐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두 마음 품고 지나온 세월을 용서하시고, 주님께서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들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아합처럼 하나님 은혜의 역사하심을 보고도 무감각한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내 소원이 이루어질 때만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라믿어왔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