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경 말씀/오늘의 미션 말씀 394

누가복음 23:51-56 요셉의 용기있는 믿음

누가복음 23:51-56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50-51) 부활의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현재를 준비하는 사람은 그 절망과 포기, 실망의 자리에서 그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다들 떠나갔지만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있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장례가 잘 마무리됩니다. 금요일은 어둠의 날이요 죽음의 날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는 이들에겐 인생의 금요일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게 하는 섭리 가운데 있는 날들입니다. 혹시 힘든 인생의 금요일을 보낼지라도 요셉처럼 믿음의 용기를 내십시다. https://youtu.be/ynCHN7fAcs0?..

잠언 16:2-7 진정으로 겸손한 자

잠언 16:2-7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5) 겸손은 하나님 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겸손은 위선이며 말과 행동으로 겸손한 모습을 보이나 그 마음 속에는 교만한 생각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겸손은 무능한 자의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자의 것으로 자기 능력을 자랑치 않는 자가 참으로 겸손한 자입니다. 또한 겸손은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기 포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포기하신 그 겸손을 본받으십시다. 겸손은 그래서 십자가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https://youtu.be/FRoBnCDt6Dk?si=HF9jg9ghUGivkCDy (겸 ..

창세기 18:22-32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창세기 18:22-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32) 세상이 참 시끄럽습니다. 곳곳에서 온갖 파열음으로 고통스러워합니다.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은 의인의 수가 아니라 의인의 유무였습니다. 하나님은 망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주시는 분이지만 악이 가득차면 비우시는 분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그랬고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습니다. 지금 이 세상도 악이 점점 도를 넘고 있습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는 언제까지 외면하시렵니까? https://youtu.be/9xjIJ9CU9UM?si=Jtla2d2TH9mwS..

출애굽기 19:1-6 대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은혜

출애굽기 19:1-6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4)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이 있고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사람 위에는 누가 있을까요. 바로 업혀 가는 사람입니다. 은혜는 대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독수리 날개로 우리를 업어 인도하고 계십니다. 나는 지금도 주님이 나를 업어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지요? https://youtu.be/1dGIO1cW-2E?si=hPULYr5gsW72uCK1 (주의 은혜라) 주님! ..

요한복음 11:38-44 불신앙을 제거하라

요한복음 11:38-44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무덤 문을 막고 있던 돌을 옮기라 명하셨지만 마르다는 불신앙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돌을 옮겨 놓는 것이 바로 믿음이며 불신앙을 제거해야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상식으로 인해 주님의 말씀에 제동이 걸리지는 않는지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혹시 우리의 가정 직장 육체에 불신앙의 돌이 막혀 있지는 않는지요? 믿음으로 그 돌을 하나하나 옮기십시다. https://youtu.be/TGuUFOcr_kA?si=-aBCuesKcEHsVdlE (..

마가복음 12:38-44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

마가복음 12:38-44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3) 과부의 헌금은 두 렙돈에 불과한 아주 적은 금액이었지만 과부에겐 생명과도 같은 큰돈으로 예수님은 액수가 아니라 그 의미를 보시기에 더 많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척도는 ‘양’이 아닙니다. 마음의 신앙고백을 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종교심을 이용해 과부의 생활비까지 노리는 서기관들의 탐욕과 위선을 폭로하십니다. 종교심을 이용해 헌금을 강요하는 세태를 비판함으로 정작 우리는 선교와 구제를 위한 헌금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https://youtu.be/oIhXUOFC9Sw?si=33VMWWKjQepk5ZD5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

마가복음 14:27-31 우리 신앙의 연약함

마가복음 14:27-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31) 예수님의 제자 12명은 모두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가룟유다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베드로는 소극적으로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라도 충직한 제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지만 그 결심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이고 한계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모습은 바로 우리 신앙의 현주소요, 우리 믿음의 자화상입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을 알고 겸손함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십시다. https://youtu.be/SIfDvfEZo5I?si=nXQeS9IN2UaQop92 (충 만) 주님! 오늘도 성령님이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마가복음 15:6-15 악인의 꾀를 쫓지않는 자

마가복음 15:6-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15) 유대총독 빌라도는 지금도 흔한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찬 관료였습니다. 빌라도는 진실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위한 결정으로 결국 영원한 죄인이 되었습니다. 바르게 쓰여지지 않는 권력은 자신을 패가망신케 하고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게 됩니다. 어찌 빌라도만 그렇겠습니까? 오늘은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정의와 공의로운 자, 오만하지 않고 악인의 꾀를 쫓지 않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누구나 다 빌라도가 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U4kkfoMuans?si=-ewZFkIHr7QIpPlK (주 ..

시편1편 복있는 사람

시편 1편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 복 있는 사람은 세 가지를 하지 않습니다. 첫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악인들의 꾀는 성공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패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둘째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인의 길에 선다는 것은 지속해서 악인의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해 습관이 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합니다. 오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인지요? https://youtu.be/hLwbp4ejsRg?si=dNVlyfq3o2Jv0EFN (복이 있는 사람은) 주님! 오늘도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

마가복음 10:46-52 영적인 눈을 열어 주소서

마가복음 10:46-52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46) 두 눈이 떠 있다고 보는 것도 아니며 눈이 멀었다고 못 보는 것도 아닙니다. 길 가의 맹인 바디매오는 두 눈이 멀었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육신적 두 눈이 성한 채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과 무리들은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그저 ‘나사렛 예수’로 볼 뿐이었습니다. 길 위의 소경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나사렛 예수’입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입니까? 혹시 나도 제자들 같이 ‘길 위의 소경들’은 아닌지요? https://youtu.be/vSoqfrHNYPw?si=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