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4. 요한복음 묵상노트(완료)

요한복음 5장 1 - 9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smile 주 2024. 4. 18. 06:20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십팔 년 된 병자

1 <연못가의 사람들을 고치심> 얼마 후,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2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근처에 기둥 다섯 개가 있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3 이 곳에는 병약한 사람, 앞 못 보는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등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4 (없음)

5 거기에 삼십팔 년 동안, 병을 앓아온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6 예수님께서는 그 남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그가 아주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낫기를 원하시오?”

7 병든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물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제가 연못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물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저보다 앞서서 물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8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당신의 침상을 들고 걸어가시오.”

9 그 즉시, 그 남자는 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그의 침상을 들고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나의 필요를 모두 아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에 가셨는데 그 성문 곁에는 베데스다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습니다. 그 못 주변에는 많은 병자가 기적적인 치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천사가 물을 뒤흔들 때에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는다는 민간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기적을 바라는 수많은 병자 중에 삼십팔 년이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주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병이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오늘의 만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을 믿고 할 기도는 무엇입니까?

 

간절한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은 삼십팔 년 된 병자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병자가 베데스다 못 근처에 있던 것만 보더라도 그가 회복을 원한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질문하신 이유는 그가 의지를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입술을 통해 은혜를 구하는 것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반응을 보이자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가 입술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를 원하십니다. 은혜에 대한 소망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간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평안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핑계로 구체적으로 구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우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의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수많은 인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그 수많은 인파가 동일한 대상을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자에게 치유가 일어납니다. 결국, 베데스다 연못가의 사람들은 물을 동하게 할 천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수많은 인파의 시선은 베데스다 연못과 천사가 내려올 하늘에만 집중되었습니다.

 

그래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옆에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그들에게 육신적 질병의 치유밖에는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육신적 질병의 치유뿐만이 아닌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마르지 않는 생명수 또한 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이 들과 같이 우리의 삶 속의 베데스다 연못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전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합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베데스다 연못! 나의 돈, 지식, 명예가 삶의 모든 문제 들을 해결시켜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의 베데스다 연못은 아닙니까?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떠한 고난을 겪게 되면, 그 고난을 가져다 준 문제에만 몰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라는 상자 속에 갇히게 되어, 그 상자 속에서 눈 앞에 보이는 문제의 해결만을 모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상자의 뚜껑을 열고 나와서 하늘을 봐야하는 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상황을 내게 허락하신 분이 주님이시며, 이 일을 통해 나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주님께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야고보서 1 2절에서 4절 말씀에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바를 알려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저자인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만나면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시험을 통해 우리가 겪게 되는 믿음의 시련이 우리가 인내를 구비할 수 있게끔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인내로 인하여 우리는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 5절에서 19절 말씀에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과 세상종말에 있을 여러 가지 징조들을 언급하십니다. 또한 이러한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핍박 가운데 있게 될 우리에게 주님은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내를 통해 우리는 핍박 속에서 우리의 영혼 즉, 우리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 순종하게 되면, 주님의 때에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가장 선하게 그 문제가 해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목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정하신 때와 주님의 원하시는 일하심의 방식이 결합될 때 주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죄란 무엇인가요? 죄는 인간이 주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를 버린 결과입니다. , 인간이 주님의 뜻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주장하는, 자기부인과는 대치되는 자기주장의 상태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는 깨어지게 되었고, 인간은 인간의 근본적 한계성의 굴레 가운데 놓여지게 된 것입니다.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인간이 인간 스스로 죄라는 선택을 하게 되어 자신을 제한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말씀과 같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도 긍휼히 여기셔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우리들의 죄를 대속해주셨고, 결국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근본적 문제인 죄에 대한 진정한 해결 곧 구원일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삶의 베데스다 연못만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눈을 들어 진정한 구원이 되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기다려야 하는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의 베데스다가 아닌 내 영혼의 진정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는 오늘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UMi23gK0T_s?si=MPICl57Lr6ojUNde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 번째 표적인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로 그 장소는 예루살렘의 양 문 곁 베데스다 연못이었고,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베데스다 못 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있는 이유는 천사가 못에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할 때에 물이 동한 후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는 민간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예수께 병 낫기를 구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자 그 병자는 곧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자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물이 동할 때 물속에 들어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의 말씀으로 그의 병은 깨끗하게 나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예수님께서는 이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이 낫고자 하는 열망을 확인하시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환경이 어떠한가 가 아닙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진정한 심령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가 입술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를 원하십니다. 은혜에 대한 소망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간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평안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38년 된 병자 같은 나의 인생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일어나라 명령하실 때 순종하게 하시고, 걸어가라 말씀하실 때도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모든 세상적인 가치관과 내가 붙들고 있었던 그 모든 헛된 애절함들 그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여, 더 좋은 길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버리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거룩을 닮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복된 삶이 되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