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9 한 주간의 말씀 요약
ㅇ복을 향한 믿음의 첫걸음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시작한 모든 일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으로 믿음의 첫발을 내디딜 때 우리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은 순종으로 믿음의 첫걸음을 옮겼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이 걸었던 믿음의 여정은 또한 우리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을 보면 불안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이 되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ㅇ떠날 때 비로소 받게 되는 복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야 할 곳과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본문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창11:3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인 창세기 12장 1절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이 아닌 두 번째 부르심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1차 부르심을 받고 데라와 롯과 함께 하란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란에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데라가 죽고 난 이후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와 부르셨습니다.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1차로 부르신 시기부터 본문의 2차 부르심까지, 유대인들의 고전에 따르면, 약 15년으로 예상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1차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했는데,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고, 아버지 데라로 인해 하란에 오랜 시간 머물러야 했습니다. '데라'라는 이름은 '지체하다', '연기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온전하지 못한 순종은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복이 찾아오는 것을 지연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단호하게 떠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3가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1. 아브라함이 떠나야 했던 본질
(1) 과거의 죄 된 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너의 고향'을 떠나라는 것은 '과거의 죄 된 땅과 삶의 방식'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의 타락한 문화의 영향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 머물렀을 때, 위치만 이동했을 뿐, 그는 여전히 바벨론 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있었습니다. 바벨론 문화의 특징은 스스로 신이 되는 문화,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문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늘까지 높아져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을 흔드는 문화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죄 된 땅에서 떠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리길 원하십니다.
(2) 과거의 잘못된 삶의 관계에서 떠나야 합니다.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것은 과거 삶의 방식을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된 인맥의 사슬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때론 세상의 방식으로 맺어진 관계가 안정감을 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맥에 매여 있다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관계 속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바벨론에서 맺은 관계가 아닌 가나안 땅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관계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관계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보여줄 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보여줄 땅'은 아직 보지 못한 땅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보면 볼 수 있는 땅입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냥 '땅'이 아닌 '그 땅입니다. 원어에서는 정관사를 붙여 '그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보시고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땅이 있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땅에 이르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3가지를 포기할 것을 말씀하시지만, 또한 7가지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떠나는 것은 오히려 복을 받는 길입니다.
(1) 아브라함에게 한정된 복
처음 3가지는 '아브라함에게 한정된 복'입니다. ①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여기서 '큰'이라는 단어는 크기뿐만 아니라 '중요성, 탁월함, 존귀함까지 포함된 단어입니다. 단순히 숫자만 많아지는 것이 아닌, 존귀한 가문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② "복을 줄 것이다." 원어를 보면 '미완료'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마르지 않는 계속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③ "창대케 하겠다." 이 또한 미완료 동사를 사용하여, 계속적인 창대함을 의미합니다. 불명예스럽게 또는 단순히 이름만 알려지는 것이 아닌, 명예로운 이름이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2)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이 받을 복
이어지는 4가지는 '세상이 받게 될 복'을 의미합니다. ④ "복이 될지라.” 다른 축복은 하나님을 주어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이 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귀한 것을 얻으면 "복 받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다." 이 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나 된 복입니다. 아브라함을 대하는 방식이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축복한 사람이 복을 받듯이, 우리도 서로를 축복할 때, 함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⑥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 이 복은 아브라함을 사람들의 저주로부터 보호하시는 특별한 복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내 옆의 성도가 바로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⑦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 또한 아브라함과 같은 복된 존재로 부름 받았습니다.
ㅇ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복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7가지 복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를 복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그 완전한 복을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된 존재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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