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2 한 주간의 말씀 요약
ㅇ믿음의 사람이라면
배우 이순재 선생님은 '2024 연기 대상'에서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을 남겼습니다.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인기가 많다고 해서,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연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믿음의 영역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평가를 받아야 한다." 물질이 많다고 인기가 많다고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ㅇ복을 받는 사람의 3가지 특징
아브라함의 인생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대안이었으며, '믿음' 하나로, 믿음의 조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계속되는 인간의 죄를 은혜로 덮어주셨습니다. '선악과 사건'에 대해서는 '가죽으로, '가인의 살인'에 대해서는 '표'를 주어 '노아 시대의 타락'에 대해서는 '방주'를 통하여, 그리고 '바벨탑 사건'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은혜의 시대를 열어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은혜의 시대를 열어갈 하나님의 대안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듯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국 복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을 받는 사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1. 말씀을 따라 이동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12:4) 하나님은 하란에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브라함은 지체 없이 이동하였습니다. 당시 그는 75세였습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할 나이가 아닌, 정리할 나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길을 걸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8) 이에 대해 성경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며, 희망이 없는 가운데 희망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순종에 대한 좋은 모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씀만 순종한다면, 이성과 합리성을 뛰어넘는 영광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따라 믿음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신앙은 실재가 될 것입니다. 반면, 롯은 '그와 함께' 갔습니다. 롯은 말씀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따라간 것입니다. 받은 말씀이 없는 사람은 환경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둘 다 하란을 떠난 것은 동일했지만, 그 이유에 있어서는 달랐습니다. 결국 롯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이 아닌, 눈에 좋아 보이는 죄악의 도시, 소돔 땅을 향해 가게 됩니다. 좋아 보이는 사람과 환경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오직 말씀을 따라 움직이시길 축복합니다.
2. 약속의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땅을 지킵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12:5) 아브라함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침내'라고 간단히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그 거리가 700km에 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길었습니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일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은 상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12:6) '그 땅을 지나라는 의미는 아브라함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서 문명의 발달지있습니다. 그런 갈대아 우르와 비교하면 약속의 땅은 형편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나마 조금 살만한 공간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미 정착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부르신 땅이 맞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이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창12:7)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브라함은 묵묵히 그 땅 안에서 머무를 땅을 찾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해서 남방으로 옮겨가면서도 그 땅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복을 받는 사람은 약속의 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결코 그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척박해 보이는 그 약속의 땅을 복된 땅으로 변화시키길 원하셨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나의 기대와 다르다 해도, 결코 그 땅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그 땅에서 복으로 살아가며 믿음의 역사를 일구어야 합니다
3.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습니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12:8) 아브라함은 이동할 때마다 제단과 장막을 세웠습니다. 세겜에서 제단을 쌓은 후, 이동하여 벧엘과 아이 사이의 산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 제단을 쌓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곳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결국 인생은 '무엇을 쌓아 올리는가의 싸움입니다.
나의 이름을 위한 바벨탑과 하나님을 위한 제단 중 무엇을 쌓으시겠습니까?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삼상15:12) 하나님과 멀어진 사울은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 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삼하18:18) 다윗의 아들 압살롬 역시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웁니다. 스스로 기념비를 세운 압살롬의 최후 역시 비참했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그 땅에 하나님의 복이 흘리들이 간 것입니다.
ㅇ결국, 복이 될지라!
말씀을 따라 움직이고, 말씀이 인도해 온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곳에서 예배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밟는 모든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결국 복이 될 것이기에, 이미 복이 된 사람처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복이 되는 은혜를 경험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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