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김은호 설립목사 주일설교/2023년 주일 설교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 (이사야 43장 4절) 2023.07.09

smile 주 2023. 7. 16. 11:00

2023.07.09  한 주간의 말씀 요약 - 씀 리뷰 65회 

https://youtu.be/V3vCvHlSEKE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  이사야 43:4

부정적인 자아상

성경에 보면 이런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던 열 명의 정탐꾼들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신장이 장대한 네피림의 후손인 자손들을 보았는데 그들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전도 해 보지 않고 싸움도 해 보지 않고 먼저 "우리는 능히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라며 패배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자아상,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도전하고 전진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그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이 상대방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4)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동 번역에서는 이 말씀을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사랑이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언제 누구에게 "너는 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소식을 듣고 정체성이 흔들리며 낙심하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비록 너희가 나의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바벨론의 포로생활 가운데 있을지라도 "너는 여전히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눈에는 내 자신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뛰어난 것도 없어 초라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정말 내 자신이 한심하게 보이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왜 이러지" 내 자신에 대하여 실망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주변 사람들의 눈에도 내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고 실패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가치이고 당신의 자존감입니다.

 

왜 당신은 보배롭고 존귀한 자인가?

 

첫째,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기에 하나님은너는 내 것이라" 당당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가치는 누구의 소유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똑같은 옷과 신발과 모자라할지라도 누구의 것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신 저와 여러분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일까요? 누가 뭐라 해도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의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된 우리는 하나님 당신의 눈에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자입니다.

 

둘째,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a)질그릇이란? 진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질그릇은 금그릇, 은그릇과 비교하면 비천한 그릇입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깨어지는 연약한 그릇입니다. 볼품도 없는 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질그릇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보배이신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릇의 가치는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금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그릇 안에 오줌이 담겨 있으면 요강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담배꽁초가 담겨 있으면 재떨이가 되는 것이고 쓰레기가 담겨 있으면 쓰레기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가치는 내 안에 계신 보배이신 예수님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르다

성경을 보면 내 자신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너무나 다릅니다. 사사 기드온을 보면 기드온은 '자신을 가장 약하고 가장 작은 자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삿6:12b)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내 자신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를까요? 그것은 평가의 기준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만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합니다 자신의 스펙과 현재의 외모와 연봉과 생활의 환경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평가합니다. 지금의 모습만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에 따라,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맡겨준 사명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함께 하시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고 그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평가가 맞을까요? 우리는 누구의 평가를 받아들여야만 할까요?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의로우시고 공평하신 하나님만이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나의 인생을 온전하게 평가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존재 가치를 알라

누가 인생을 가치 있고 존귀한 자로 살아갑니까? 돈이 많은 자입니까? 많이 배운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를 아는 자입니다. 내 자신이 존귀한 자임을 아는 사람이 존귀한 인생을 삽니다. 내 자신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가 가치 있는 인생을 삽니다. 왜 사람들이 쉽게 상처받고 쉽게 흔들리며 열등감 속에 인생을 살아갑니까? 가방끈이 짧아서입니까? 상황이 힘들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만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받은 만큼 그 수준에 맞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는 만큼 존귀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