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3. 누가복음 묵상노트

누가복음 11장 37- 44 내면을 가꾸라

smile 주 2023. 10. 11. 10:00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37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바리새파 사람이 자기와 함께 식사하자고 청하자, 예수님께서 식사 자리에 가서 앉으셨습니다.

38 예수님께서 식사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 모습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씻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욕심과 악한 것이 가득 차 있다.

40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있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42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를 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은 무시한다. 어느 한 가지만 하지 말고 이 모두를 함께해야 한다.

43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의 앞자리를 좋아하고, 시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44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숨겨진 무덤과 같다. 사람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위를 걸어 다닌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한 바리새인이 말씀 사역을 하고 계신 예수님을 점심 식사에 초청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모습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들의 정결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제사장에게만 손을 씻도록 명령을 하셨는데( 30:19-21 참고),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확대 적용해 온 백성이 지켜야 할 관습으로 만든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관습에 매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뜻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는 관습을 버립시다.

 

오늘의 만나

부정적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가린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뜻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관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예수님은 관습에 매인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정결 예식을 통해 부정이 벗겨지고 깨끗해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무게를 달기 어려운 향신료까지 정확하게 재서 십일조를 드렸으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고 시장에서 문안 인사받는 것을 즐겼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외적으로는 화려할지 모르지만, 내면이 시체처럼 썩어 있어 다른 이들까지 더럽히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사람들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평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시다.

 

오늘의 만나

내 안에 있는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은 무엇입니까?

내면이 깨끗한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우리의 존재가 정의되며,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세상에 흘려보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지만,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기에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기에 우리가 가는 곳에 그 생명의 능력이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깨어질 빈 질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이 텅 빈 질그릇이라면,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어떤 선한 영향력도 흘려 보내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우리의 반면교사가 등장합니다. 그 반면교사는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내면을 주목하셨고, 그 내면에서 흘러가는 악영향을 경고하십니다.

그들의 내면은 부패했고, 그들의 부패한 내면은 다른 사람들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주목할 점은 바로 우리의 내면을 가꾸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이 바리새인과 같이 부패해져 있지 않은지, 그래서 우리 주변에 복이 아닌, 화를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내면이 다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전한 모습을 회복하고, 우리를 통하여 우리 주변을 복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내면을 가꾸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의 내면에 탐욕과 악독이 아닌, 구제와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점심을 잡수시기 전에 예수께서 손 씻지 아니함을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39).’ 여기서 손을 씻는 것은,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정결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30:19~21절에 나오는 제사장들을 향한 명령이었는데, 바리새인의 구전은 이 관행을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확장했으며,

또한 거룩한 제물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먹기 위한 준비로 적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식적 정결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잔의 겉이 아니라, 잔의 속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탐욕과 악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우리의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드셨음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정으로 깨끗해지려면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41)’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외식으로 자신의 탐욕과 악독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때.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사랑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소망하기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이 내면의 탐욕과 악독을 내버려 둔 채, 외면만 그럴싸한 모습으로 치장하는 외식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지으신 하나님의 시선을 기억하며, 사랑의 구제를 통하여 진정한 내면의 정결함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화가 아닌, 복을 흘려 보내주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화 있을진저’라고 세 번이나 경고하십니다.

첫 화는,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지만, 이웃을 향한 공의로움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화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장소로 의도된 회당이 바리새인들의 특전과 명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는, 평토장한 무덤 곧, 보이지 않게 잘 위장된 바리새인들로 인하여, 무덤과 접촉할 때 일어나는 부정함이 백성들에게 흘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들이 바리새인들과 접촉하여 더러워졌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의 화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탐욕과 악독은 잘 위장되었지만, 그 화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공의롭게 대하지 않는 그들로 인하여, 기도와 말씀을 자신의 명예로 악용한 그들로 인하여, 비록 외적으로는 화려할지 모르지만, 시체처럼 썩어 있는 그들의 부정함이 다른 사람들까지 더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부정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화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화가 아니라 복을 흘려보내주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공의롭게 사랑하며, 알량한 개인적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진정한 기도의 자리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통하여 부정함이 아니라 깨끗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복이 힘 있게 흘러갈 것입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오늘 하루, 우리를 향한 주님의 경고를 굳게 붙들고, 우리의 내면을 탐욕과 악독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하고 가꾸어감으로 우리가 속한 곳곳에 화가 아니라, 하늘의 복을 흘려 보내주는 축복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약)

오늘 본문은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에게 대해 예수님이 여섯 개의 화를 선언을 하는 내용이며 오늘은 이 중 3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화 있을진저라고 세 번이나 경고하십니다. 첫번째 화는,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지만, 이웃을 향한 공의로움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화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장소로 의도된 회당이 바리새인들의 특전과 명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화는, 평토장한 무덤 곧, 보이지 않게 잘 위장된 바리새인들로 인하여, 무덤과 접촉할 때 일어나는 부정함이 백성들에게 흘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위선 된 행위로 말미암아 은폐된 무덤같이 다른 사람들을 은연중 부정하게 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잘못)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드러난 외면을 깨끗하게 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인 반면, 사람 안의 더러움, 곧 내면의 더러움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탐욕과 악독이 가득 찬 내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이 하는 바리새인의 이중성을 예수님이 지금 통렬하게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말씀을 탐구하는 것도 좋고, 말씀을 내 삶의 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위계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지나쳐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말씀의 참된 뜻에서 벗어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며, 내면의 정결함은 도외시한 채 겉의 정결함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중요한 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었고, 사소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우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잘못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충분히 반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대신 감당하신 예수님! 우리가 전에는 어둠속에 있었던 자였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평토장한 무덤같이 형식적이며 종교적으로 치장하는 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고 낮아지며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를 향한 주님의 경고를 굳게 붙들고, 교만과 탐욕으로 탁해진 저의 마음과 영혼을 주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내 안에서 사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